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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전통의 롤스로이스…IoT 달고 혁신 날개

임형준 기자
입력 : 
2019-11-21 04:05:02
수정 : 
2019-11-24 19: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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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고장의 97%는 자동예측
직경 10㎜ 로봇이 정밀점검

車·항공기 거쳐 첨단기술 업체로
롤스로이스, 두 번째 탈바꿈 중

엔진 가동시간 따라 요금 내는
혁신적 모델 `코퍼레이트케어`
서비스 부문이 매출 50% 차지

엔진에 센서 부착해 실시간 진단
장비 검사·보수 소형로봇도 개발
사진설명
롤스로이스의 엔지니어가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Trent XWB' 엔진 유지·보수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롤스로이스]
"우리는 엔진 기업이 아니라 기술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항공기 엔진 제조사인 롤스로이스의 최고 디지털 책임자 닐 크로켓은 지난해 '런던 인공지능(AI) 서밋'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롤스로이스는 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첨단 기술을 도입하면서 이를 활용해 동시에 '비즈니스 혁신'을 이뤄냈다고 평가받는다.

1884년 창업한 롤스로이스는 세계적인 고급 자동차 브랜드로 익숙하지만 1973년 자동차 사업을 매각한 뒤 항공기 엔진 제조에 집중해 왔다. 자동차 사업부는 현재 BMW에 속해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양대 여객기 제조사인 보잉과 에어버스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트렌트(Trent) 계열 엔진은 롤스로이스의 대표적 생산품이다. 트렌트 엔진은 에어버스의 A330, 보잉의 787드림라이너 등 35개 항공기 기종에 탑재되고, 세계 최대 여객기인 '에어버스 A380'에도 트렌트 900이 들어간다.

롤스로이스의 기존 사업모델은 다른 제조사들처럼 항공기 엔진이나 가스터빈을 생산해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롤스로이스는 1990년대 후반 아메리칸 에어라인으로부터 유지·관리를 포함하는 서비스 계약을 제안받은 뒤 발 빠르게 서비스 중심 사업모델을 도입했다. 엔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토털케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사진설명
롤스로이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실제 항공기 운행 시간에 따라 엔진 요금을 청구하는 '코퍼레이트케어(Corporate Care)' 서비스를 고안했다. 한 번에 수천억 원짜리 엔진을 구매하지 않고 엔진 가동 시간에 따라 사용료를 내는 방식인데, 항공기 엔진 제조비용이 상승하면서 항공기 제조업체와 항공사들이 부담을 느낀다는 점을 파악한 롤스로이스의 전략이었다. 마치 자동차 리스처럼 초기 비용을 최소화해 고객사들의 항공기 도입 부담을 줄인 것이다. 현재 롤스로이스 민간항공기 엔진 사업 매출 중 50%가 이러한 서비스 부문에서 발생하고 있다. 롤스로이스의 이러한 비즈니스 혁신은 제조·서비스 분야에서 각종 첨단기술을 선도적으로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과금을 위해 엔진 사용 현황을 파악해야 했던 롤스로이스는 엔진에 각종 센서를 부착하고 온도·공기압·속도·진동 등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했다. 이런 정보는 과금에만 사용하지 않고 엔진 상태를 진단해 사전 정비에 활용하거나 연료 절감을 위한 엔진 제어 등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 썼다. IoT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해 미래에 발생할 문제를 예측하고 항공사들의 점검 일정 관리를 지원한 것이다. 이러한 기술을 통해 롤스로이스 엔진에서 발견되는 장애 중 약 97%는 자동 예측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효용가치를 고려해 IoT 기술을 적극 도입한 롤스로이스가 엔진 제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민간항공기 엔진 시장점유율 확대에 성공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롤스로이스가 IoT와 함께 선제적으로 도입한 '디지털 트윈'은 엔진 인증을 위한 엄격한 테스트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을 아끼고 있다. 디지털 트윈이란 물리적인 제품이나 제조 공장을 실제와 똑같이 가상화하는 기술이다. 예전에는 직접 비행기 엔진을 돌려 성능을 시험해야 해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면, 디지털화한 엔진으로 가상 테스트를 거쳐 손쉽게 설계 오류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지 몇 초 만에 엔진 시험 결과를 알 수 있어 엔지니어는 실제 테스트를 한 번에 통과할 때까지 가상 시험을 반복하면 된다. 롤스로이스는 이제 로봇 개발과 연구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차세대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영국 '펀버러 에어쇼'에서는 롤스로이스가 개발 중인 로봇 4종이 공개됐다. 스웜 로봇(Swarm Robot), 검사 로봇(Inspection Robot), 원격 보어블렌딩 로봇(Remote Bore blending Robot), 플레어 로봇(Flare Robot) 등이다. 스웜 로봇은 카메라가 탑재된 직경 10㎜ 크기의 작은 로봇인데, 곤충처럼 생긴 여러 개의 로봇이 군집(Swarm) 형태로 항공기 엔진 속으로 들어가 실시간 영상을 전송한다. 이 로봇을 활용하면 엔진을 눈으로 검사하기 위해 항공기에서 엔진을 분리할 필요가 없어진다. 플레어로봇은 한 쌍의 뱀과 같은 형태로, 엔진 속을 내시경처럼 보며 들어가 스웜 로봇을 쏟아내는 역할을 한다. 검사 로봇은 엔진 안에 부착돼 엔진이 작동하는 상황에서도 극한의 고열을 견디며 엔진의 각 부위를 검사해 유지·보수 관련 보고서를 제공한다.

개발 중인 로봇들은 실제로 사용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게 롤스로이스의 설명이지만, 회사는 다음 세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미국 하버드대 등 세계적 연구 기관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원격 보어블렌딩 로봇은 이미 테스트 과정에 있어 몇 년 안에 활용될 예정이다. 원격 보어블렌딩 로봇은 원격 수리가 가능하도록 돕는 장비다. 비전문가 그룹인 로컬 보수팀이 엔진에 로봇을 설치하면 롤스로이스의 전문 엔지니어들이 원격으로 작업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수리가 필요한 항공기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는 시대를 열게 되는 것이다.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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